THE HISTORY OF THE NEW BALANCE
1906 교정화 브랜드로써 출발
영국 출신의 이민자, 윌리엄 J 라일리는 발에 무리가 많던 사람들을 위해 ‘아치서포트’를 제작한다. 이는 평발, 요족 등을 치료하는 교정화 브랜드로써 나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뉴발란스의 시작이었다.
1906 닭의 발톱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
뉴발란스의 아치 서포트는 닭의 3개의 발톱이 완벽한 균형감을 보여준다는 것을 모티브로 삼아 디자인되었다. 탁월한 기능성으로 뉴발란스는 점점 인지도를 높여나간다.
1940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보스톤 지역 러닝클럽 ‘브라운 백 해리즈’에 소속한 다니엘 맥 브라이드가 뉴발란스의 러닝화를 신고 로드 레이스 대회에 참가하여, 그 우수한 기능성을 증명했다.
1961 ‘발 볼 맞춤’이 가능한 러닝화
1960 출시한 트랙스타와 트랙스타2는 발 너비에 따라 사이즈 구분이 가능하였으며, 우수한 기능을 갖춘 밑창으로 러너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72 새로운 전환점을 맞다
비즈니스맨으로서 영업, 마케팅에 특출난 재능을 보여주던 짐 데이비스는 1972년 뉴발란스를 인수한다. 이후 러닝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1975 서서히 높아지는 인지도
발등을 유연하게 잡아주는 인-스텝 레이싱 기술을 이용해 모델 320을 제작하였고, 이를 신은 톰 플레밍이 1975년 뉴욕 마라톤에서 우승하게 된다. 그렇게 뉴발란스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1976 숙련된 장인만이 갖춘 빛나는 기술력
뉴발란스의 신발은 아메리카의 뉴 잉글랜드 지방에서 숙련된 장인에 의해 제조되고 있다.
1978 여성을 배려한 스니커즈 출시
당시, 뉴발란스의 간판 모델인 320에 여성의 발에 알맞은 패턴을 이용해 W320을 출시하게 된다. 발 볼이 좁은 여성의 특징을 반영하여 착화감을 큰 폭으로 향상하는데 성공하였다.
1982 업계 내 최고의 기술(목적, 디자인, 기능)을 선보이다
뉴발란스 내에서 1,000점 만점에서 990점이 매겨진 M990은 뉴발란스가 그간 쌓았던 기술의 정수가 집약된 결과물이었다. 당시 스니커즈 업계에서도 최고의 기능성을 자랑하였으며 100달러라는 높은 가격(당시 일반적인 스니커즈의 가격은 50달러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은 큰 화제를 불러왔다.
1989 자수에 자긍심을 새기다
일찍이 신발 혓바닥 라벨 등에 작게 Made In USA라는 것이 표시되었지만, 최근의 제품에는 미국을 나타내는 문자가 곳곳에 자수로 크게 들어가 있어 Made In USA임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다.
1992 라이벌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다
뉴발란스는 최고의 스니커즈를 미국 내에서 제조하고 있지만 다른 브랜드는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